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벨라루스 관계 (문단 편집) === 중세 === 벨라루스와 독일은 서로 폴란드를 사이에 두고 있어 중세 초까지는 접촉이 적었다. 그러나 1200년 [[리보니아]] 해안 지방에 정착한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폴로츠크 공국]]을 공격하고 [[다우가바 강]] 수운 무역을 방해하면서 독일 기사단 측과 폴로츠크 공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폴로츠크 공국에서 독일 기사단의 요새를 공성하는데 실패하면서 전쟁은 독일 기사단의 승리로 끝나고 이는 중세 폴로츠크 공국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폴로츠크 공국의 몰락에 뒤이어 폴로츠크 공국과 수운을 통해 무역하던 [[키예프 루스]]의 본진 우크라이나 일대가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루테니아|백루테니아와 흑루테니아]]의 여러 소규모 공국들은 [[킵차크 칸국]]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혹여나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다시 침공하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튜튼 기사단]]의 침략으로 곤경에 처한 리투아니아인들과 이해 관계가 맞물리며 루테니아의 여러 공국들은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별 다른 저항없이 투항하기 시작했다. 이후 13~14세기 벨라루스가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벨라루스의 [[민스크]], [[나바흐루다크]] 등등의 도시들은 독일식의 도시자치법인 마그데부르크 법을 적용받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리투아니아 대공국 측은 [[크림 반도]]와 독일, 폴란드 일대의 유대인들이 대공국 내 도시에서 상공업에 종사할 권리를 보장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독일계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아슈케나짐|아슈케나지 유대인]]이 벨라루스 각지에 대거 정착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크림 반도와 리투아니아를 연결하는 무역에 종사한 유대인들은 [[카라임]]이라 하여 아슈케나짐과 별개의 종파로 이들이 사용한 모어는 [[카라임어]]이였다.] [[튜튼 기사단]]에 맞선 [[그룬발트 전투]] 당시 백루테니아의 기병 상당수가 폴란드군, 리투아니아군과 함께 참전하여 승전을 거두었던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